가. 光州盧氏 三司公 腆派 先系 失傳來歴
남송(南宋)이 망하고 1264년 원(元)나라 세조가 등극(登極) 후 고려(高麗)는 원나라의 정치적 지배를 받아 왔다. 1343년(高麗 忠惠王 4)에 원나라는 고려의 죄인들을 사면(赦免)한다는 구실을 붙여 사자(使者)로 타적(朶赤) 등 6명이 왔다.
이때 고려의 충혜왕은 병을 핑계로 그들을 만나지 않으려 하자 내관(內官) 고용보(高龍普)가 말하기를 원나라 황제(皇帝)는 항상 전하(殿下)의 불경(不敬)함을 심히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데 이번에도 원나라 사신들을 공손히 맞이하지 않으면 큰 화(禍)를 입을 것이라 하니 충혜왕(忠惠王)은 할 수 없이 조복(朝服)을 정제하고 백관(百官)들과 함께 정동행중서성(征東行中書省)에 나가 그들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충혜왕을 결박하고 매질까지 하며 시종(侍從)들마저 해치려 하자 백관들이 모두 도망치고 말았다. 그때 지평(持平) 노준경(盧俊卿) 등 여러 신하들이 창(槍)에 찔리고 칼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고, 또한 그들은 고용보(高龍普), 기철(奇轍), 홍빈(洪彬) 등과 야합(野合)하여 많은 고려 신하들을 옥에 가두고 당시의 고관(高官)이나 세도가(勢道家)들의 가택(家宅)을 수색하여 재물을 약탈하고 사람을 무참하게 죽이기까지 하였다.
이 때문에 광주노씨(光州盧氏)를 비롯 여러 성씨(姓氏)가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삼사공(三司公) 전(腆)은 충청도 옥천으로 낙향하여 곧 세상을 뜨므로 그의 선대(先代)를 실전(失傳)하여 삼사공 전(腆)을 기세조(起世祖)로 세계(世系)를 이루고 그 후손들이 현재 상주(尙州), 함양(咸陽), 영월(寧越) 등지에 살게 되었다.
參考文獻: 1.光州盧氏三司公派族譜, 2.高麗史
나. 光州盧氏(三司公派) 世系圖
다. 行列表(三司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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