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파 문중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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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평공 종중 종원님 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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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노인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12-19 20:33 조회5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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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12월 5일 효성사 친목행사시 준비한 효성사 사적비문을 올립니다 

상촌 선생(桑村先生)() (1337,고려충숙5~1414,조선태종11),

() 중보(中甫)광산 노공(光山盧公)은 제공(諸公)과 함께 우리 태조()께서 나라를 세워 창업 하실 때에 도와 태종[恭靖王] 때에 이르러 우의정(右議政)에 배명되었다.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3일간 조회(朝會)를 폐하고 예관(禮官)을 파견하여 조제(弔祭)하였다. 시호[易名]를 경평(敬平)이라 하니, 하늘을 받치고 태양을 받드는[擎天捧日] ()과 세상을 돕고 백성을 잘되게 하는 [輔世長民] 덕을 지녔다는 뜻이다. 후손에게서 보건대 또한 그 유풍(柔風)의 여운(餘韻)을 증험할 수 있을 것이니, 현손(玄孫)에 백마장군(白馬將軍()초휘(初諱) 영손(永孫), () 군직(君直)같은 이는 중종(中宗정묘 년(1507,중종2)에 국역(國逆)을 토벌하여 나라를 편안케 하니,

정난 일등 공신(靖難一等功臣)에 녹훈되고 광원 군(光原君)에 봉() 받아 시호(諡號)는 충의(忠毅)이다. 5대손(五代孫) 운암(雲菴) 자원(自元)() 대숙(大叔)은 성종 조(成宗朝)에 대사헌(大司憲)으로 타고난 효도(孝道)

우애(友愛)로 정일두(鄭一蠹)김 한훤(金寒暄)을 사사(師事)하여

조 정암(趙靜菴)김 충암(金冲菴)과 도학(道學)을 창명(倡明)하였다.

긍재(肯齋) 자형(自亨)() 통숙(通叔)은 중종 조(中宗朝)에 대사성(大司)대사헌(大司憲)을 역임하여 학술(學術)과 덕행(德行)으로 세상의 추중(推重)을 받았고, 이 회재(李晦齋)서 화담(徐花潭)성 청송(成聽松)과  외우(畏友)로 추허(推許)하였으며, 증시(贈諡) 절효(節孝)이다.

송와(松窩) 자정(自貞)() 도숙(道叔)은 중종(中宗) 정해 년(1527,중종27)에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벼슬이 대사간(大司諫)에 이르렀다.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물러나 연잎으로 옷을 삼고 혜초(蕙草)로 띠를 삼아 임천(林泉)에 노닐며 종오소호(從吾所好)하였다. 8대손(八代孫) 소재(蘇齋) 수신(守愼 1515,중종10~1590,선조23)() 과회(寡悔)은 선조[宣廟朝] 때에 영상(領相)로 도학(道學)과 문장(文章)이 한 시대 에 우뚝하였고 시호(諡號)

문간(文簡)이다. 16대손 오당(梧堂) (1797,정조21~1882,고종19)

() 방윤(方潤)은 헌종(憲宗) 병오(1846,헌종12) 진사(進士)로 행() 오위장(五衛將), 수자(壽資)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로 가학(家學)을 이어받아 임천(林泉)에 은거하여 독서하며 스스로 즐겼다. 오호라! 이상 제 선생(諸先生)의 공훈(功勳)과 덕업(德業)이 이미 활달하여 소재선생(蘇齋先生) 같은 이는 지위와 덕이 함께 높아 성명(聖明)을 도와 국가의 계책을 환하게 하니, 높은 명성이 고금[今古]에 드러나 또한 어찌 그리 성대한지…… 이 모든 이의 공()이 나라에 보존되고 가르침은 후세에 전하니, 후인(後人)이 마땅히 보답하여 제사 드릴 바이거늘 하물며 자손이 선조(先祖)에게야! 장흥 안양 기산(長興安良岐山)은 노씨(盧氏)의 세거지(世居地)로 순종(純宗) () 병진 년(1976)에 본() 자손이 효경동(孝敬洞)에 사우(祠宇)를 세우고 부터 유림(儒林)의 협조로 완성하여 상촌 선생(桑村先生)을 주벽(主壁)으로 삼고 노 충의(盧忠毅)운암(雲菴)긍재(肯齋)송와()소재(蘇齋)오당(梧堂) 제 선생(諸先生)을 좌우로 하여 차례로 배향(配享), 모두 칠위(七位)이다. 골짝 이름 따라 편액 하여 효성사(孝星祠)라 하고

이미 향사한지 십 수 년이러니, 여러 유생[章甫]들이 사적비가 없어서는 안 된다.’하니, 돌을 쳐서 완성하고, 노우(盧友) 병인(炳寅)이 여러 유생[章甫]

뜻으로 재종질(再從姪) 기재(錤在)생기(生基) 두 사람을 보내어 내게 부탁하였. 노우(盧友)는 내 고향 친구이니, 그 어찌 불문(不文)을 핑계로 사양하겠는가.

삼가 장초(狀草)를 살펴 위와 같이 차례로 서술하여 명하여 가로[銘曰]

三日撤朝 삼일철조 삼일 간 조회 폐하니

可知功德 가지공덕 공덕 가히 알리로다

諡得忠毅 시득충의 시호를 충의라 하니

討誅國逆 토주국역 국적을 토벌하여서라

孝友出天 효우출천 하늘이 낸 효성과 우애로

師事暄蠹 사사훤두 김 한훤정 일두를 사사하도다

學行推重 학행추중 학행으로 추중 받고

易名節孝 역명절효 절효라 시호하도다

稱病棄官 칭병기관 병을 칭하고 벼슬 떠나

從吾所好 종오소호 내 좋은 바를 좋았도다

道學文章 도학문장 도학 문장으로

位與俱高 위여구고 자리도 높았도다

承襲家學 승습가학 가학을 이어받아

隱居守操 은거수조 은거에 지조 지켰으니

人之過此 인지과차 여기를 지나는 사람

可不折腰 가불절요 경의를 표하지 않으랴


단기 4321년 무진 3월 일에 죽산(竹山) 안병탁(安秉柝)이 찬하고

영광(靈光) 김태경(金太璟)이 쓰고

참의공 종중(參議公宗中)이 세우다.


오운(梧雲) 노공(盧公)병수(炳壽)기행 비문(紀行碑文)


선비가 때를 만나지 못하면 초야(草野)에 은거하여 그 몸 하나라도 선()

하여 영화(榮華)와 이익(利益)에 마음에 두지 아니하고, 궁함에 꿋꿋하며

가난을 평안히 여길 뿐이라. 근세(近世)에 오운(梧雲) 광산 노공(光山盧公)

병수(炳壽), () 옥인(玉仁)같은 이가 그런 사람에 거의 가까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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